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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학을 떼다’는 모진 학질을 견뎌낸 사람들의 고통에서 태어나,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을 표현하는 말이 되었다.
우리는 살면서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겪고 나면 종종 “이번에 아주 학을 뗐다”라고 말한다. 몹시 힘든 일을 겪었거나 어떤 사람에게 크게 시달린 뒤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을 겪고 싶지 않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 사람 때문에 학을 뗐다”, “이번 장사하면서 사람 상대하는 데 학을 뗐다”, “한번 크게 고생하고 나니 여행이라면 학을 떼게 됐다”처럼 오늘날에는 그 의미가 매우 넓게 쓰인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학’은 학교에서 배우는 학문(學)도 아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 학(鶴)도 아니다. 이 말의 ‘학’은 옛사람들이 두려워했던 병인 ‘학질’과 관련된 말이다.
학질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말라리아에 해당하는 질병을 일컫던 이름이다. 현대인은 말라리아라는 말을 들으면 모기가 옮기는 감염병이라는 사실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을 지금처럼 알 수 없었던 옛사람들에게 학질은 훨씬 두렵고 기이한 병이었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심한 오한에 몸을 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높은 열에 시달리며 땀을 흘리다가 어느 순간 조금 괜찮아지는 듯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다시 오한과 발열이 찾아오곤 했다. 병이 나은 줄 알았다가 또다시 몸을 뒤흔드는 고통이 찾아오는 것이다.
지금처럼 체온계도 없고 혈액검사도 없으며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도 없었던 시대를 생각해 보자. 어느 날 갑자기 온몸이 얼어붙는 것처럼 떨리기 시작하고, 이불을 여러 겹 덮어도 추위가 가시지 않는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서는 불덩이 같은 열이 올라온다. 땀으로 옷과 이불이 흠뻑 젖고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간다. 겨우 열이 내리면 사람은 이제 살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며칠 뒤 비슷한 증상이 또다시 찾아온다. 그렇게 오한과 발열이 되풀이되면서 사람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드는 것이 학질이었다.
그래서 옛사람들에게 학질은 단순히 ‘아픈 병’ 이상의 존재였을 것이다.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함께 안겨 주는 병이었다. 고통은 한번으로 끝날 때보다 반복될 때 더욱 무섭다. 한번 견뎌냈다고 생각했는데 또 찾아오고, 이제 괜찮다고 안심했는데 다시 몸을 뒤흔드는 고통이 시작된다면 사람은 병 자체뿐 아니라 병이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공포까지 품게 된다. 학질이 사람에게 남긴 것은 열과 오한만이 아니라 바로 그 기억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학을 떼다’라는 표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몹시 괴롭고 지긋지긋한 일을 겪은 뒤 다시는 그것을 경험하고 싶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는 뜻이다. 학질처럼 모질고 반복되는 고통을 겪고 마침내 그 고통에서 벗어난 것처럼, 어떤 경험이나 사람, 상황에 너무나 시달린 나머지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고개를 저을 만큼 싫어졌을 때 우리는 “학을 뗐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질병의 이름은 우리의 일상에서 점점 멀어졌지만 그 병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감정은 말 속에 남았다는 점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실제 학질을 겪어보지 않았다. ‘학질’이라는 단어 자체를 낯설어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학을 떼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병은 시대와 함께 우리 생활에서 멀어졌지만 그 병이 남긴 두려움과 고통의 기억은 언어라는 그릇에 담겨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온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언어는 역사가 된다. 역사는 왕과 전쟁, 정치와 제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름조차 남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어느 여름밤 열병에 시달리며 이불 속에서 몸을 떨었던 기억도 역사다. 가족이 아픈 사람의 이마에 손을 얹고 밤새 걱정했던 순간도 역사이고, 병이 나은 뒤 “다시는 그런 고생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마음도 역사다. 그런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경험이 축적되어 하나의 표현으로 남아 오늘 우리의 입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학을 떼다’라는 말에는 인간이 고통을 기억하는 방식도 담겨 있다. 사람은 즐거운 경험보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더 오래 기억하기도 한다. 크게 데어본 사람이 불을 조심하고, 사람에게 깊이 상처받은 사람이 새로운 관계를 두려워하며, 사업에서 큰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다시 시작하기를 망설이는 것도 같은 이치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고통에 대한 기억은 남는다. 그리고 그 기억은 때때로 우리에게 “다시는 그곳으로 가지 마라”고 경고한다.
그렇다고 고통의 기억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인간은 고통을 기억하기 때문에 같은 실수를 피할 수 있고 위험을 경계하며 더 신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어린아이가 뜨거운 물건에 손을 대었다가 데이고 나면 다음부터 조심하게 되는 것처럼, 삶에서 겪은 고통 역시 우리에게 하나의 지혜를 남긴다. 그런 의미에서 ‘학을 뗐다’는 말은 단순히 “너무 싫다”는 감정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한 번의 경험을 통해 인간이 무엇인가를 배웠다는 뜻도 그 안에서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하나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한번 크게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모든 가능성까지 닫아버리는 것은 과연 지혜로운 일일까. 한 사람에게 배신당했다고 모든 사람을 믿지 못하고, 한 번 실패했다고 다시는 도전하지 않으며, 사랑에 한번 상처받았다고 마음의 문을 영원히 닫아버린다면 고통은 이미 지나갔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그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셈이 된다.
그래서 ‘학을 떼다’라는 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면 인간의 기억이 가진 두 얼굴을 만나게 된다. 고통의 기억은 우리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가두기도 한다. 과거의 상처가 경계심을 만들어 위험을 피하게 해주는 것은 삶의 지혜다. 그러나 그 기억 때문에 앞으로 올 모든 가능성까지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속박이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학을 떼고 싶은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어떤 사람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돈 때문에 그럴 수도 있으며, 일이나 사랑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는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간의 마음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그 경험을 다시 바라볼 수 있다면, 그때 우리는 고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그 경험은 내게 무엇을 남겼을까”, “다시 같은 상황이 온다면 나는 어떻게 다르게 행동할 것인가”라고 묻는 순간 고통은 단순한 상처에서 하나의 경험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어쩌면 삶이라는 것은 수없이 많은 ‘학을 떼는 경험’을 지나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사람에게 학을 떼고, 욕심에 학을 떼고, 실패에 학을 떼며 우리는 조금씩 자신의 한계를 알아간다. 젊은 날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사람, 지켜야 할 것과 내려놓아야 할 것을 조금씩 배우게 된다. 그 배움 가운데 상당수는 책에서 얻은 지식이 아니라 직접 아파보고 실패하고 후회하면서 얻은 것이다.
옛사람들이 두려워했던 학질은 이제 우리에게 낯선 질병의 이름이 되었지만, 그들이 느꼈던 고통과 두려움은 ‘학을 떼다’라는 말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네 글자 속에 한 시대의 질병과 생활, 두려움과 기억, 그리고 인간이 고통을 견뎌내는 방식이 숨어 있는 것이다.
말은 참으로 오래 산다. 사람은 떠나고 시대도 변하며 병의 이름조차 희미해지지만, 그 시대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은 언어 속에 남는다. 그래서 오래된 우리말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단순히 어원을 공부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 말을 만들고 사용했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며, 그들의 두려움과 희망을 오늘의 우리 마음과 연결해 보는 일이다.
‘학을 떼다’라는 말도 그렇게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만큼 힘들었던 경험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그 경험은 당신에게 상처만 남겼는가, 아니면 앞으로 살아갈 삶을 조금 더 현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지혜도 남겼는가.
고통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고통을 어떤 기억으로 남길 것인지는 결국 살아남은 사람의 몫이다. 학질이 지나간 자리에서 옛사람들이 다시 일어나 일상을 살아갔듯이 우리 역시 삶에서 수없이 학을 떼면서도 다시 사람을 만나고, 다시 사랑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학을 떼다’라는 말을 단순히 지긋지긋한 경험을 뜻하는 말로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 말 속에는 지독한 시간을 견디고 마침내 그 시간 밖으로 걸어 나온 사람의 모습도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학을 뗐다는 것은 다시는 그 고통을 겪고 싶지 않다는 말이지만, 어쩌면 그 고통을 끝내 견뎌냈다는 또 하나의 말인지도 모른다.”
✍️ 글 : 김태식
🎨 이미지 : AI 창작
📚 참고문헌 및 자료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학’, ‘학질’, ‘학을 떼다’ 관련 어휘와 관용 표현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전통사회의 질병과 생활문화 관련 자료
- 한국의 전통 의학·민속 및 질병문화 관련 자료
- 말라리아의 역사와 감염 특성에 관한 일반 의학 자료
※ 이 글은 ‘학을 떼다’라는 우리말 표현과 학질에 관한 언어·역사 자료를 바탕으로 인간의 고통과 기억이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한 인문학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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